잡지사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절, 제 손에서 가장 먼저 탈락하던 원고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바로 ‘첫 문단이 지루한 글’이었죠.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첫 문단이 독자의 시선을 붙잡지 못하면, 그 뒤의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마치 아무리 귀한 선물이라도 포장지가 매력 없으면 아무도 열어보지 않는 것처럼요.
지난 2편에서 우리는 생각을 결과로 만드는 ‘코어라이팅 5단계 설계도’를 완성했습니다. 이제 그 설계 위에 건물의 인상을 결정할 ‘정문’을 세울 차례입니다. 독자는 이 문 앞에서 단 3초 만에 결정을 내립니다. 이 글을 읽을지, 아니면 가차 없이 스크롤을 넘길지를 말이죠.
오늘은 독자의 이탈을 막고 몰입을 이끌어내는 효과적인 첫 문단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왜 내 첫 문단은 항상 외면받을까
우리가 무심코 쓰는 대부분의 첫 문장은 독자의 시간을 갉아먹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형식적인 인사, 긴 자기소개, 모두가 아는 배경 설명 같은 것들 말이죠.
“안녕하세요, 저는 10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보의 양은 폭발적으로…”
이런 문장들은 글을 쓰는 사람의 긴장을 풀어주는 예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이 글은 시간 낭비’라는 명백한 신호에 가깝습니다. 독자는 글쓴이의 사정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원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첫 문장부터 독자의 뇌리에 직접 접속해야 합니다.

첫 문단의 핵심 공감법, 독자의 머릿속으로 직접 들어가기
가장 강력한 첫 문장은 독자가 평소 속으로만 하던 말을 대신 꺼내주는 문장입니다. “어? 이거 완전 내 얘긴데?”라는 반응이 나오는 순간, 독자는 글쓴이를 ‘나를 이해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마음의 문을 엽니다.
예를 들어,
“글쓰기가 어렵나요?”라고 막연하게 묻는 대신 “팀장님께 보낼 보고서 첫 문장을 못 써서 20분째 커서만 깜빡이는 경험, 해본 적 있나요?”가 효과적이죠. 첫 문단의 힘은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독자의 마음속 언어를 꺼내주는 순간, 글은 이미 절반 성공한 셈입니다.
또는 “SNS 글쓰기가 고민이신가요?”보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은 올렸는데, 그 밑에 들어갈 문장을 쓰다 지우다 반복하느라 10분을 넘긴 적 있지 않나요?”가 훨씬 강력합니다.
이처럼 독자가 실제로 겪었을 법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거울 뉴런(Mirro Neuron)’ 효과가 작동합니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볼 때 뇌가 마치 자신이 직접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반응하는 신경세포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생리적 메커니즘입니다.
독자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마치 자신이 그 상황에 놓인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텅 빈 화면에서 커서만 깜빡이는 막막한 순간’처럼 감정을 자극하는 언어가 효과적인 이유입니다.
몇 해 전 큰 화제가 되었던 ‘조용한 퇴사’를 다룬 한 시사 주간지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혹시 ‘조용한 퇴사’를 꿈꿔본 적 있나요? 마음은 이미 회사를 떠났지만, 월급날까지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직장인들의 소리 없는 파업.”
이 문장이 강력했던 이유는, 수많은 직장인이 한 번쯤 품었던 내밀한 감정을 정확히 언어화하며 거대한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자신의 마음을 대신 표현해주는 문장 앞에서 멈춥니다.

문제에 ‘나’의 손실을 대입시켜 첫 문단 강화하기
공감을 얻었다면, 이제 그 문제가 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일’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이때 효과적인 것이 바로 ‘손실 회피(Loss Aversion)’ 심리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는 기쁨보다 잃는 고통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밋밋하게 “기획서를 잘 써야 인정받습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공들여 만든 기획서. 하지만 팀장님은 첫 페이지만 보고 ‘그래서 요점이 뭐야?’라고 묻습니다. 당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설득의 실패’가 평가받는 순간이죠.”라고 표현해보세요.
‘인정받지 못함’이라는 추상적 결과보다 ‘팀장의 싸늘한 표정’, ‘공들인 노력의 증발’처럼 구체적인 손실을 보여줄 때 독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입니다.
첫 문단의 코어라이팅 포인트는 ‘손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독자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이 책의 제목은 그 자체로 문제 정의의 교과서입니다. ‘우울감’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죽고 싶다”와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상반된 욕망의 충돌로 표현했죠.
또한 유튜브에서 자주 보이는 “퇴사고 싶지만, 통장은 말리고 있다”라는 제목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욕망(퇴사)’과 ‘현실(통장 잔고)’의 충돌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는 ‘이건 내 현실이다’라고 느끼며 콘텐츠에 끌립니다.

결과를 약속하는 첫 문단 공식
독자가 글을 다 읽은 뒤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독자는 ‘정보’보다 ‘변화’를 위해 시간을 투자합니다. 따라서 과정이 아닌 결과를 약속해야 합니다.
“다양한 팁을 알아보겠습니다.”라는 모호한 문장 대신,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당신의 노트엔 어떤 글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첫 문단 공식’ 하나가 저장되어 있을 겁니다.”라고 제시해보세요. ‘알아본다’는 독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저장된다’는 이미 완성된 결과처럼 느껴져 훨씬 매력적입니다. 코어라이팅의 핵심은 약속입니다. 독자가 얻을 ‘결과’를 확신시켜줄 때, 글은 설득이 아니라 신뢰가 됩니다.
💡클래스101 공식 홈페이지
그들의 슬로건 “모두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은 ‘온라인 강의’라는 수단(How)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삶’이라는 결과(What)를 약속합니다. 우리의 첫 문단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글의 구조를 설명하기보다, 이 글을 읽은 후 독자의 내일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첫 문단은 결승선입니다
첫 문단은 글의 워밍업 구간이 아닙니다. 글의 성패를 결정짓는 결승선입니다.
이제 당신의 글 앞에서, 이 세 가지를 스스로 점검해보세요.
1️⃣ 독자가 겪는 상황을 ‘내 이야기처럼’ 묘사했는가.
2️⃣ 그 상황이 왜 지금 중요한 문제인지 각인시켰는가.
3️⃣ 이 글이 해결책이나 결과를 분명히 약속하고 있는가.
이 세 가지 질문에 모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글은 독자의 시간을 얻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독자는 당신이 만든 정문을 스스로 열고, 기꺼이 들어올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는 ‘소제목 설계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